//열린 마당
열린 마당 2019-01-24T14:34:12+00:00

미8군 장병들의 기립박수

작성자
윤학수
작성일
2019-03-05 22:59
조회
2318
지난 7월 20일 저녁, 화성에 위치한 수원과학대학교 SINTEX에서 금곡학술문화재단 주최 ‘미8군 장병을 위한 문화의 밤’ 행사가 열렸다. 6.25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미군 병사가 준 껌 하나를 스무 명 넘는 동무들과 며칠 동안 돌려가며 씹었던 진주 외곽 산골 마을의 어린아이가 육십 여 년이 흐른 뒤에 그 병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8년 전부터 시작한 주한미군을 위한 최대 규모의 축제다. 지금까지 이 행사는 한국전쟁 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Walton H. Walker 장군을 기리기 위해 워커힐 W호텔에서 개최됐었는데, 금년에는 미8군이 평택으로 이전해서 그들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중간 지점인 수원과학대학교를 택했다고 한다. 화성시가 그리 큰 도시가 아닌데도 그런 큰 행사장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SINTEX 홀은 규모와 시설 면에서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이번 행사가 우리 청춘합창단을 소개하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는 생각에서 2부 순서에 합창단이 출연할 기회를 주십사고 부탁드렸고, 금곡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내 요청을 수락해 주셨다. 우리 합창단이 창단된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주한미군 장병들을 위한 행사에서 노래한다고 하니 단원들은 모두 열광한다. 우리 합창단의 목적이 낮은 데로 임하는 것이고, 나라를 위해,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노래로 봉사하는 것인데, 대한민국을 지켜 주기 위해 이역만리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수고를 아끼지 않는 주한미군 장병들을 합창으로 위로한다는 것은 우리 합창단의 목적에 더없이 잘 부합되는 활동이어서 모든 단원들이 일종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청춘합창단에 입단한 지 어느덧 6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우리 합창단의 모습을 금곡 선생님과 금곡학술문화재단 관계자들에게 한 번도 제대로 보여드릴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은 나의 불찰이 컸다. 특히 작년에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됐을 때 시사회에 선생님을 모시지 못했고, 작년 9월에 롯데 콘서트홀에서 있은 제3회 정기연주회에도 초청하지 않은 것은 큰 결례였을 뿐더러, 우리 합창단의 실체를 제대로 소개할 기회를 날려버린 큰 실수였다. 선생님께서는 행사 전날까지도 우리 합창단을 남자들 약 40명쯤이 모여 군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알고 계셨다고 하니 나의 불찰이 얼마나 컸는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번 행사에서 우리 청춘합창단은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러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던 곡 ‘My Way’, 세 개의 완전히 다른 곡이 하나처럼 연주되는 곡 ‘I Believe’, 그리고 우리 민족의 가락 ‘아리랑’의 세 곡을 연주하기로 했다. 세 곡 모두 작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개최된 세계합창페스티발에서 오스트리아 관중들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받았던 곡들이다. 그 중에서도 두 번째 부른 ‘I Believe’는 곡의 독특함이 돋보이면서도 한국전쟁을 계기로 만들어진 곡이라는 점에서 이번 행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었던 것 같다. 남성들은 ‘I Believe’를 연주하지만 여성들은 구노의 ‘Ave Maria’를 부른다. 게다가 피아노 반주는 바하가 작곡한 ‘평균률(Temperament)’을 연주하는 매우 특이한 곡이다. 이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남성들이 내지르는 함성에 가까운 열창을 들으면 온몸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소리가 평균 연령 66세의 노년합창단이 내는 소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기에 관중들은 더욱 열광하는 것 같다. 우리의 전통 가락 ‘아리랑’은 요즘 국립합창단 작곡가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우효원씨가 편곡한 곡인데, 이 또한 모든 관중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곡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곡 ‘아리랑’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미8군 사령관 Bills 중장의 거수경례를 신호로 600명의 장병들과 700명이 넘는 청중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한꺼번에 일어나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내주는 것이 아닌가! 작년 오스트리아에서 있었던 5분 동안의 기립박수의 감동이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관중의 열광적인 환호에 감격해서 흘리는 우리 단원들의 눈물은 그들의 예술적 감수성이 예민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군 장병들의 문화적 성숙함에 감탄하면서 오늘도 한국과 미국이 하나가 되었다는 애국심이 발동했던 것이라면 과장일까?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를 외면할 수 없어서 우리는 사전 준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앙콜송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태리 가곡 ‘돌아오라 소렌토’를 부르면서 저 600명의 미군 장병들이 한국이 그리워서 다시 찾는 모습을 연상해본다.

 

이번 연주를 통해 우리 청춘합창단 단원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행사장에 네 시도 안 돼 도착했는데 잠깐의 리허설 시간을 빼고 이 더운 날씨에 작은 공간에서 하염없이 기다린 끝에 아홉 시가 넘어서야 무대에 섰으니,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입이 열 발은 나오고, 여기저기서 불평소리가 난무했으련만, 누구 하나 싫은 내색 없이 기다리면서, 오히려 서로에 대한 정을 돋우는 시간으로 승화시키는 모습은 우리 합창단의 성숙함을 한껏 드러낸 참 모습이었다고 생각되어 흡족하기 그지없다. 늦은 시간에 연주를 마치고 다시 김해까지 먼 길을 내려가는 삼순씨의 얼굴에 기쁨만 가득함을 보면서, “모두가 이 마음이려니~~~!” 하는 만족감이 저절로 입가에 배어나온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Bills 사령관에게 “우리 노래가 정말 좋았다면 올해 안에 Camp Humphreys에서 우리 합창단의 대규모 연주회를 마련해 주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일순간도 기다리지 않고 “Yes!”한다. 이젠 세계 최대의 미군기지에서 대규모 연주회를 가진 첫 번째 합창단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쓰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9월에 우즈베키스탄에서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위로 음악회를 마치면 쉴 틈도 없다. 그 연주회가 우리 청춘합창단을 미국에 심고, 대한민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과시하는 동시에, 대한민국 안보의 핵심인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도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하기에 우리 청춘들은 피로도 모르고 달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