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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당 2019-01-24T14:34:12+00:00

와우, 오스트리아

작성자
윤학수
작성일
2019-03-05 22:57
조회
1391
새해 첫날이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을 가슴 설레게 하는 음악회가 있다. 바로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다. 거장 리카르도 무티가 네 번째로 지휘봉을 잡은 올해 공연은 90여 개 나라에 중계되어 약 5,000만 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되었고, 무티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회였다는 극찬을 받았다.

빈 필하모닉은 1842년 창단된 세계 최초의 오케스트라이며, 신년음악회는 1941년부터 매해 개최되는 클래식계의 대표적인 행사이다. 오케스트라 자체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는 빈 필의 신년음악회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유명한 왈츠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가족이 둘러앉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어 좋다.

“지휘자가 지휘를 안 하고 가만 서있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 호호!”

지휘자는 의례히 끊임없이 팔을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며느리가 연주 도중에 화난 듯 무표정하게 멈춰 서있는 지휘자를 보며 깔깔거린다. 그러다가 긴 머리채를 폭발적으로 휘날리며 포르테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티의 지휘는 그야말로 名演 그 자체다.

모차르트의 나라. 빈 소년합창단을 1498년에 만든 나라. 세기를 풍미하던 지휘자 카라얀의 동상이 지금도 자기 집 뒷마당에서 지휘봉을 잡고 관광객들에게 영원히 아름다운 곡들을 선사하는 음악의 나라. 인구가 870만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이면서도 아무도 작은 나라로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강소국.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소개되었듯이, 100년 넘게 세계합창경연대회를 주최해온 합창의 나라, 오스트리아!

음악적인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그 오스트리아에서 대한민국의 음악 수준을 과시하고, 문화 강국 대한민국의 國格을 한껏 높인 합창단이 있으니 다름 아닌 KBS 남자의 자격 프로를 통해 2011년에 태어난 ‘청춘합창단’이다.



(사진 1.2 우즈베키스탄 연주 장면.  사진3 와싱톤 중앙장로교회 연주.

사진4 국립중앙 박물관 연주 장면.  사진 5.6 오스트리아 그라츠 연주장면)

나는 2012년 전역과 동시에 이 합창단에 들어와서 현재 부단장 겸 대외협력처장의 역할을 맡고 있다.

특이하게도 3개월의 한시적 프로그램을 위해 방송국에서 만들었는데, 방송이 끝나고도 자생적으로 살아남아, 세계 최고의 음악가들에게조차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UN본부에서 남북통일을 노래하고, 나아가 세계 공연은 물론, 남북통일의 선발대 역할을 위한 평양 공연을 꿈꾸는 합창단. 이미 고양 아람누리 콘서트홀에서 시작하여 ‘예술의 전당’을 거쳐 ‘롯데 콘서트홀’에서까지 정기연주회를 가졌으며,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만든 합창단이 이제 생긴 지 기껏 6년 남짓한, 평균연령 65세의 노인(이기 싫어서 억지로 청춘이라는 이름을 붙인)합창단이라는 사실은 어찌 보면 음악사적으로도 획기적인 기록이지 않을까 싶다.

2015년 6월 15일, 대한민국 성인합창단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UN본부에서 세계 각국 대사들을 모시고 남북통일을 외친 이후 청춘합창단은 ‘Go Global'의 기치 아래 세계로 뻗어 나아갈 구상을 했고, 그 첫 프로젝트가 작년 11월 하순,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 그라츠에서 개최된 ’Voices of Spirit, Internationales Chorfestival Graz'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그라츠 시청사에서 그라츠 부시장님 인사말씀과 힐퍼성당 개막식 장면)

원래 이 행사는 국제 합창 경연대회 형식으로 오랜 세월 이어왔는데, 몇 년 전부터 초청연주 형식으로 바뀌었고, 이번에는 9개국에서 25개 합창단이 참가하여 3일 동안 그라츠 시내 여러 공연장에서 연주회가 이어졌다. 모두 유럽의 합창단이고, 어린이부터 대학생과 청장년의 준 프로급 합창단들이었으며,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의 청춘합창단이 참석했다. 물론 유일한 시니어(노년)합창단이다.

이번 페스티발에서 청춘합창단은 개회식과 폐막식에서 두 번 연주를 했는데, 두 차례 모두 관중들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특히 폐막공연에서는 앙콜 연주를 할 수 없는 두 번째 순서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관객이 일시에 일어나서 무려 3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황홀한 순간을 누릴 수 있었고, 이런 모습을 처음 접하는 합창단 단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래를 들은 관객들의 감동에 이어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이 그 박수에 감격한 것이다. 우리를 그라츠까지 초대해준 오스트리아 매니지먼트사 대표의 말에 의하면,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음악적 자부심이 강해서 자기들 수준에 맞지 않으면 계란 던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지만, 좋은 연주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은 박수를 보낼 줄 아는데, 자기가 20년 넘게 오스트리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연주회를 경험했지만 그런 박수세례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패막연주와 함께 연합합창단 지휘자의 모습)

2층 객석까지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메운 오스트리아 관객들은 아마도 동양에서 노인들이 왔다니까 페스티발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양념 정도로 생각했다가 그 어떤 젊은 합창단도 들려주지 못한 엄청난 소리를 내는, 그것도 악보도 보지 않고 원어로 노래하는 노인들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누구나 사랑하는 청춘합창단은 또 하나의 역사를 수립하고 개선했다. 앞으로 더 많은 나라에 한국의 합창을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3월에는 평창 패럴림픽에서도 연주가 계획되어 있으며, 남북 평화의 기수로서 평양에서 노래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앞으로 자주 에코비전21 독자들께 청춘합창단의 활약상을 소개하고 싶다.



(청춘합창단 패막 연주와 관객들의 모습)

그런데 이번 연주 여행에서 나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묘한 매력이 있음을 느꼈다. 품위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이번 신년음악회에서 춤을 추던 무희들이 정확하게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다지 미모라 할 수 없는 평범한 얼굴이지만 자신감 있는 표정. 그들의 세련되고 우아한 발동작에서 느껴지는 힘과 생동감이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격조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힘찬 발걸음은 어디서 오는 자신감일까?

(힐퍼성당 청춘합창단 개막연주 장면)

한때 전 유럽을 호령하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후예라는 자부심, 세계 최고의 음악 국가라는 긍지, 세계 최고의 청정국가라는 윤리의식 같은 것들이 그들의 몸에 한껏 배어 있어서가 아닐까?

우리 청춘합창단이 그들에게 충격을 주고 온 것은 확실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서 최고를 마음껏 칭찬해 주는 자세와 선진 국민의 기품을 크게 배우고 왔음도 분명하다.



(그라츠 시청사 초청 만찬 연주장면)

비엔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직접 관람하면서 새해를 여는 행복이 내 평생에 한 번이라도 주어졌으면 하는 허황된 꿈을 꿔본다. 오스트리아의 매력에 한 번 더 빠져보고 싶기 때문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단원들은 벌써 여행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금곡 선생님께서 늘 강조하시는 아름답고, 맑고, 밝고, 깨끗함이 가득한 나라, 오스트리아. 우리 ECCOVISION21의 최종 목표가 바로 세계를 이렇게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