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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당 2019-01-24T14:34:12+00:00

연습 참관기 - 박 휘 섭

작성자
comhanun
작성일
2019-12-10 22:40
조회
1879
연습 참관기

2019. 11. 29.
박 휘 섭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11 월 26 일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 연습을 참관했던 두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희들은 함께 합창활동을 하는 사람들로서, 수준 높은 유명 합창단의 연습과정을 지켜본다는 설렘으로 잔뜩 긴장한 채 연습장에 들어섰습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수첩과 연필을 손에 들고서…. 그리고 그 기대는 완전히 충족되었습니다. 깨알 같은 글씨가 수첩의 두 면을 채우는 세 시간 동안, 저는 결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배운 가르침은 무엇보다도 기본에 충실함이었습니다. 단원들이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은 물론, 연습에 몰입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휴대폰이 울리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떤 한 성부(聲部)의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파트에서는 조용히, 그리고 집중해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것이었습니다. 옆 사람과 잡담을 하거나, 연습이 진행되는 부분을 따라 부르거나, 자기 파트를 얹어 부르거나 하는 단원은 한 분도 볼 수 없었습니다.

지휘자 김 상경 선생님은 “합창에서 좋은 소리는 색깔도 맛도 없어 다른 사람과 잘 섞이는 소리입니다. 옆 사람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자기의 소리가 자연스럽게 블렌딩이 되는지 살펴보십시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합창의 기본은 어울림이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자기희생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말씀은 결국 튀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이 합창에 참여하는 이들의 자세여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른 합창단에서도 이렇게 기본을 강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하나, “노래 부르려고 하지 말고 sound와 pitch에 신경을 쓰세요.”라는 말씀 – 아니, 합창단에 노래하러 왔는데 노래를 부르지 말라니 이건 또 무슨 말씀인가 싶었습니다. 이어지는 선생님의 설명에서 답을 얻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이 들어가면 피치 감각이 많이 떨어집니다. 또 합창의 소리는 마치 아이스크림이 녹아들 듯한 sweet melting sound여야 합니다.” 각자는 합창단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개성과 존재를 드러내기보다 정확한 피치와 적절한 소리로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데 가장 많은 신경을 쓰라는 주문으로 들렸습니다. 그것은 곧 각자의 역할과 책임에 충실할 것을 일깨우는 말씀일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잘 지어진 벽돌건물의 벽돌들을 연상했습니다. 벽돌의 색깔이나 톤, 크기, 질감이 다른 것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면 건물의 조화가 깨어지고 말지 않겠습니까?
“소리를 내지 못하더라도 와서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것이 합창입니다.” - 다른 어떤 말씀보다도 인상적이고 마음에 남는 말씀이었습니다. 여느 합창단에서는 많은 이가 이 핑계 저 핑계로 연습에 빠집니다. 그리고 때로는 없는 구실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몸상태가 좋지 않고 노래를 할 수 없더라도 와서 듣는 것 또한 연습임이 분명합니다.

“Graz에 갔을 때 연주회장에 피아노가 없었잖아요.…”로 이어지는 말씀도 기억에 남습니다. 합창연주에 피아노가 없었으니 얼마나 당혹스러우셨습니까? 그런데 ‘엄마가 아기를 안고 어르듯이’라는 말로 아카펠라의 본질을 강조하며 연습하시는 모습에서 반주가 없더라도 제대로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합창의 위대함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 그것, 의식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관록이 있고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끄집어내십시오.”라는 말로 단원들의 자신감을 일깨우고, 오디션을 하듯 한 사람 한 사람 개별 연습을 시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단원들은 주눅들지 않고 거부감을 느끼거나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보기 좋은 장면이었습니다. 합창단의 저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지난 번 정기연주회가 호평을 받았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우리 실력이 아니었을 수도 있으니까.” - 철저한 자기분석, 그리고 연습을 강조하는 말씀이겠지요.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한다는 주마가편(走馬加鞭), 원석을 자르고, 쏠고, 쪼고, 갈아 값진 보석을 만든다는 절차탁마(切磋琢磨)란 이를 이르는 말일 것입니다. 독일 속담도 이렇게 말합니다. “연습이 대가를 만든다.” Übung macht den Meister.




다음 날 저희 합창단의 정기연주회가 있어 준비를 하느라 도중에 연습장을 나와야 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품격 있는 합창을 듣고, 또 명품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지켜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그 세 시간은 지루하기는커녕 계속 긴장하고 즐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지휘자 선생님의 손끝 하나로 폭풍 같은 ff와 팽팽히 당겨진 명주실 같은 pp가 만들어질 때, 변화무쌍한 articulation에 감동했고 합창음악의 묘미를 새롭게 느꼈습니다.

아마추어이지만 아마추어 같지 않고, 실버합창단이라 하면서도 실버 같지 않은 정격합창단의 건강한 소리는 합창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부러운 것이었습니다. 여성의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남성 파트의 건강한 소리를 듣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청춘합창단이 세계 유수의 합창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품합창단으로 모습을 드러낼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랍니다. 세계인이 줄을 서 청춘합창단의 공연에 오고 음반을 찾는 날을 눈에 그려봅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합창단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