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다가오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견공들, 왜? [중앙일보] 입력 2019.01.13 09:00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20) 견공 없는 산막은 상상하기 힘들다. 지난 20여년간 수많은 견공이 나와 함께 산막에서 고락을 같이했다. 대풍이, 기백이, 순돌이, 금순이, 진순이, 은순이, 해랑이, 대백이, 샌드, 곰곰이, 누리…. 지금은 그 이름도 가뭇한 사랑스러운 나의 견공들이다. 서로 의지했고 정을 주고받았다. 때로는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많이 했을 만큼 충직하고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줄잡아 50여 마리 이상의 강아지가 우리 집에서 태어났고 다른 집으로 분양되기도 했다. 그 많은 개 중 어느 놈이 먼저고 어느 놈이 나중인지 이젠 그 족보도 헷갈리지만, 그들 모두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저 세상이든 이 세상이든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모두가 행복하고 다음 생에도 반드시 내 곁으로 다시 오길 바란다. 이름도 다양하고 생긴 것도 다양하고 성격도 다양하나 그 모두 사랑을 주고받아 단 한 녀석도 범상하지 않으니 행복했을 뿐 다른 생각은 없다. 산막 스쿨을 닮아 순서도 체계도 없지만 이제 생각나는 대로 이들을 그려보기로 한다. 나와 살다간 50마리의 견공 사랑하는 산막의 개들. [사진 권대욱] 화산 대백! 15년 전 사부께서 지은 대백이의 원래 이름이다. 오래전 한밤중에 산막 갔을 때 보이지 않아 마실 나간 줄 알면서도 어떤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얼마 전부터이던가. 그 아이의 눈망울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을 본 건. 나의 예감은 한 번도 어긋남이 없었으니 대백이 죽으면 어디다 묻을까 고민했었다. 독서당 옆 양지바른 곳, 그곳이라면 책 읽다 주는 눈길이 자주 머물 법했고 그 시선 너머에 머무를 녀석의 숨결과 눈빛을 자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그랬는데 이 무정한 녀석은 내게 그런 호사를 허용치 않았구나. 이곳을 거쳐 간 많은 개처럼 이 녀석 또한 죽을 때 자취를 감추었다. 대풍이가 그랬고, 순돌이가 그랬고, 샌드와 금순이가 그랬다. 우리에 갇히지만 않았더라면 해랑이 역시 그랬을 것이다. 이곳을 거쳐 간 모든 개는 그랬다. 주인의 손에 묻히기를 거부한 채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갔다. 그리고 잊혔다. 대백이 역시 잊힐 것이다. 나도 그 누구도 다 잊힐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잊히기를 원치 않는가. 부질없는 짓이다. 산막에 올 때마다 대백이를 생각한다. 햐아! 요 어린 녀석(기백, 1세)이 벌써 춘정을 알고 사내 행세를 하려는구나. 이리되면 대백이(13세)는 어찌 되느냐. 한때 인근에서 젤로 잘 나가던 수컷이요, 모든 동네 암캐들의 선망을 한몸에 받았던 몸이다. 곰곰이(7세)가 대백이 딸이고, 기백이는 업둥이 어린 수컷이니 기백이가 대백이 사위가 되려는 참인데, 곰곰이는 대백이 딸이면서 또한 대백이의 아내이기도 하니. 아, 복잡 완전 견판이로구나. 그나저나 대백이가 안 보인다. 젊은 녀석한테 딸과 처를 뺏기고, 이 견 같은 세상 늙으면 죽어야지 하며 집 나간 건 아닌지 모르겠네. 대백아 세상이 그렇고 그러하며 가는 세월 누가 막겠느냐. 늙고 병들면 만사가 소용없으니 어서 맘 풀고 빨리 돌아와 천수를 다하여라. 개에게는 개의 세상이 있고 사람에겐 사람의 세상이 있는 것이니 사람의 잣대로 개를 보면 견판이지만 개의 잣대로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쓸데없이 개판, 견판 할 것 없이 그저 사람의 도리를 다함이 아름답다 할 것이다. 대백이는 그렇게 갔다. 이후 세 녀석을 기르던 중 곰곰이가 행불되고 기백이 또한 보이지 않아 기다리고 찾고 있었으나 행적이 묘연했다. 말 못하는 누리 붙잡고 물어봐도 그저 낑낑거리기만 할 뿐 갑갑하고 애통한 마음 그지없다. 대저 수캐들은 바람나면 집 나가 며칠씩 안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라 어느 집 장가가 사위 대접 잘 받고 있기만을 희망한다. 사람도 개도 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인연 법을 벗어날 수 없음을 잘 알지만, 없으면 보고 싶고 만나지 못하면 애통함 또한 인지상정인지라 애써 누르거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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