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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어머니 그리고 곡우 – [사]청춘합창단
//열린 마당
열린 마당 2019-01-24T14:34:12+00:00

쌀과 어머니 그리고 곡우

작성자
권대욱
작성일
2018-11-10 09:37
조회
1001

우리 세대에게 그것은 단순한 재화가 아니다
그것은 안정과 풍족
사랑과 사람간의 따뜻한 정이요 평화요 행복이다

지금부터 40년 전
난생 처음으로 12평짜리 내 집 하나를 장만하신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쌀독에 쌀 채우고 연탄광에 연탄 채우신 후 외할머니를 모셨던 일이다

스물에 홀로되어 일점혈육 아들하나 보며 갖은 고생하는 막내딸이 눈에 밟혀 보실 때 마다 눈물짓던 외할머니에게
보세요 이제 집도 있고 쌀도 있고 연탄도 있고 욱이가 취직도 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 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어머니에게 쌀과 연탄은 사랑이요 자랑이요 효성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
나도 쌀을 나눈다
경북 안동 풍산벌 고향 몇 마지기도 안되는
논에서 소출된 쌀 가마니를 삼촌 고모들 집집마다 조금씩 나눠드렸다

곡우로부터
삼촌 고모 숙모님들 그렇게 기꺼워하시고 백부님으로부터도 참 잘했다 칭찬들었단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숙연한 마음을 가눌수가 없다

어머니 생각이 나고 함께 삯 바느질하며 그 곤궁한 세월 서로 의지하며 애쓰시고 희생하신 삼촌 고모님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이 밀려온다

그렇다
그 쌀은 단순한 쌀이 아니요
사랑이요 가족이다
고항의 냄새요 추억이다

기특한 생각을 내준 곡우와
수고해 주신 백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당신들에겐 제수씨요 형수님이요 언니 올캐였던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실 것이다

그나마도 이렇게나마라도
자주찾지 못했던 미안함과 죄송했던 마음이 다소나마 사라져 기쁘다

소헌집 1976년 5월 15일의 기록이다
가을 하늘 눈 부시게 푸른 오늘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한다

#####

백수의 노모를 찾아뵙는 일. 막내딸의 처참한 모습을 바라보시며 애태우시든 어머니 앞에 억지로라도 우슴을 주며 빵 한 개라도 살 형편만 되면 찾아뵙고 따뜻한 품안에서 하루정도 묵어오기도 했고 1975년 여름철 처음 마련한 새마을 아파트로 엄마를 모셔오기도 했다. 어느 자식보다 더 애처로워 가슴 아파하셨고 아들들한테서 얻어모은 용돈을 버선목에서 몰래 꺼집어 주시던 일.. 나도 이제 내 집이라고 있으니 보여드려야하나 어머니가 보시기에 무언가 흐뭇함을 느끼고 가셔야 할 것 같아서 제일 값싼 양파 한 자루를 사서 베란다에다 달아매고 연탄광에 연탄을 수십장 포개놓았다. 그리고 새 질부도 보고 종숙모님도 같이 청했다. 하루밤을 유하고 나니 소명하신 우리 큰형님 폐스럽다며 담박 모시고 갔다.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전과 다른 화기가 좀 돌았다. 그 후 가셔서 감천언니께 말씀 하시기를 나는 이제 대욱어미 사는 것을 보고오니 마음이 놓인다시며 양파이야기 연탄도 있드라 하시면서 흐뭇해 하셨대요. 나는 그때 녹음기에다 엄마의 마지막 목소리라도 녹음하려해서 말씀 한마디 하시라고 했더니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아 부디 우애 있게 지내라. 그리고 용선어미 잘돌봐 주어라. 다음 말은 잇지 못하셨다. 그런데 그 녹음테이프는 보관하지 못한 게 유감스럽다. 그러든 어느 날 어머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의지마저 잃어버렸으니 원통하고 평생을 애태워 드리기만 했든 불초함을 어이다 말하리라. 묵중하시고 수려하시든 어머니의 육성마저도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1976년 5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