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25) 오랜만에 정장 차림으로 출근했다. 그동안 양복을 입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패딩 조끼, 카디건, 홈스펀 상의에 노타이의 콤비 차림이 대부분이었다. 제대로 된 수트에 타이, 타이 핀, 행커치프까지 하고 출근하니 감회가 또 새롭다. 비가 내린다는 오늘. 날이 많이 풀렸다는 이야기요, 봄이 머지않았다는 이야기다. 산막의 봄을 기다린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 오래간만에 차려입어보았다. [사진 권대욱] 왔나 싶었는데 아직 아니 온 봄 봄이 어디쯤 왔나. 누리 앞세워 뒷산에 올랐더니 아직도 봄은 오지 않았다 하더라. 혹시 싶은 마음에 누리 뒤를 쫓았으나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봄이 아니면 아니지 싶어 원두막에 올라본다. 얼마 만인가. 이렇게 맑고 명징한 의식으로 나의 봄을 기다려 본 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봄이 왔나 싶었는데 아직은 아니다. 진달래, 개나리는 물론, 목련, 매화 역시 아직 깊은 잠을 자고 물도 아직 녹지 않았다. 그래서 물을 긷고 책을 보았다. 비 내리는 산막. 강 건너 봄을 기다리는 외에 별 할 일도 없으니 잔디관리나 해야겠다. 산막의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얼었던 배관이 녹으면서 이음새가 터지고, 수도가 터지고, 보일러가 새고, 갖가지 자질구레한 수고로움이 따른다. 잔디관리는 그중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완전 무장하고 드넓은 잔디밭을 관리한다. 그리고 산해진미 다 필요없는 16시간 단식 후의 아점. 거친 밥상이 좋다. 청국장 비빔밥을 먹는다. 연례행사 같은 이 수고로움을 크게 저어치 않는 것은 그 수고보다 열배는 더할 기쁨을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수고로움 뒤의 기쁨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다. 군자고궁(君子固窮)의 정신이 책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부터 장작 난로를 피우면 방안에 연기가 자욱하고 눈이 매워 자세히 살펴보니 연통에서 연기가 솔솔 샌다. 연통이 막혔나 보다. 하기야 난로 놓은 지 어언 10여년인데 청소는 단 한 번밖에 안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다. 만사 제쳐두고 연통 대청소부터 해야겠다. 작업계획을 머릿속에 그린다. 전동 드릴로 피스 풀고 연통을 분해하고…. 쌀쌀하긴 해도 이미 봄이다. 햇볕 좋은 오후, 올리브에 와인 한 잔과 함께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봄은 아직이다만 대화는 따뜻하다. 영어 공부에 맛 들인 곡우는 학교 때 자기가 영어 공부 열심히 했다고 주장하고, 나는 열심히 공부한 영어가 겨우 그거냐며 속으로 웃는다. 중·고교 6년을 종로 2가부터 계동까지 뛰다시피 한 결과 지금도 걸음을 잘 걷는다. 기억의 저편에서 50년 전 이야기를 들춰 함께 하지만 생각은 이처럼 각자 또 따로인 우리는 언제나 '함께 또 따로'다. 따로 또 함께가 좋다. 햇볕 좋은 오후에 올리브를 곁들여 와인 한 잔 마셨다. 여유롭게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사진 권대욱] 나에게 돈은 어떤 의미인가. 재물은 또 어떤 의미인가. 돈과 재물이 어떤 사물에 대한 대가일 때 그것은 그냥 돈이요, 재물일 뿐이다. 거기에 마음이 더해지면 그것은 돈 이상이 된다. 사랑이 되고 존경이 되고 고마움이 된다. 내가 쓴 돈만이 내 돈이다. 은행 통장과 금고에 억만금이 쌓여있다 한들, 쓰지도 못하는 돈이 내 돈일 순 없다. 내 손을 떠난 돈은 내 돈이 아니다. 그 순간으로 다 잊는다. 비 오는 날 산막은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다. 밥 먹는 것도 앉아 이야기하는 것도 야외에선 어렵고 날 추울 때도 불편하다. 아래채 창고로 쓰고 있는 오두막에 눈길을 꽂은 지 몇 해나 되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 기회에 결심한다. 내년 봄엔 필히 역사(?)를 일으켜 비 오나 눈 오나 안락하고 쾌적하게 손님 맞을 준비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은 그 자체로 참 유쾌하고 밝아 그야말로 창의를 발휘케 하니 내 마음도 젊어짐을 느낀다. 이곳의 모든 시설물이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고, 나의 계산법은 나만의 독특함이 있어 나는 지금까지도 그 기쁨을 누리고 있으니 이 장사 또한 무조건 남는 장사임을 안다. 십여 년 전 이층집 올리고 첫날 밤 창밖으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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